캠퍼스 벚꽃 촬영을 위해 빌리려던 단렌즈가 남긴 긴 여운
졸업 전 마지막 봄을 기록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올 3월 초였습니다. 연구실 업무 틈틈이 DSLR을 챙겨 다녔지만, 번들 줌렌즈로는 배경 날림이 기대만큼 고급스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피사체만 또렷하고 꽃잎이 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사진을 꼭 남기고 싶어 단렌즈를 하루 대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신품을 살 여유가 없어 렌털 플랫폼과 중고 카페를 둘러보며 적당한 선택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평일 저녁 강의를 마치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자마자 매물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밝은 조리개와 고급 코팅으로 유명한 35mm 단렌즈를 일일 2만 원에 빌려 준다는 글이었는데,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설명에는 스크래치 없고 보관 상태 최상, 심지어 실내 촬영만 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댓글이 달린 시간도 당일 오후여서 아직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듯 보였고, 저는 ‘혹시 운 좋은 날인가’ 하는 기대를 품고 채팅 문의를 눌렀습니다.
첫 번째 대화의 속도
판매자분은 응답이 빠르고 정중했습니다. 본인을 졸업반 사진 동아리 선배라고 소개하며, 다음 주부터 군 훈련소에 들어가야 해서 장비를 모두 처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여료가 아니라 보증금을 먼저 받고 되돌려 주는 형식이라며, 제시한 금액은 30만 원이었습니다. 사용 후 바로 돌려주면 당일 환불해 주겠다는 조건도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바쁜 대학원생끼리 번거로운 절차를 줄이기 위한 방식이라며, 예금주는 본인 실명이니 안심하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 덕분에 오히려 안심이 됐습니다.
하지만 보증금이 갑자기 언급되자 망설임이 생겼습니다. 상대는 렌즈 시리얼 번호가 찍힌 사진과 구매 영수증을 보내 주며 실제 소유자임을 입증하려 애썼습니다. 사진마다 날짜 표기가 있었고, 손글씨로 오늘 날짜를 써 넣은 메모도 눈에 띄었습니다. 형식은 충분했지만 어쩐지 설명이 지나치게 매끄럽다고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단서가 만든 균열
렌즈 외관 사진을 확대해 보는데 금속 테두리 위에 매우 얇은 흠집이 보였습니다. 게시글 내용과 달리 ‘생활 스크래치 전혀 없음’이라는 표현이 과장된 듯 보였습니다. 불현듯 이미지 검색을 돌려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각도의 사진이 공식 리뷰 사이트에서 찾아졌고, 흠집 위치와 길이가 완벽히 동일했습니다. 제가 받은 사진이 실제 소유자가 찍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가져온 자료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조심스레 물어보자 상대는 추가로 다른 각도의 사진을 보내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진에서 빛 방향이 전혀 달랐고, 렌즈 위 반사된 스튜디오 조명도 이전 사진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깔끔한 정면샷과 달리 급히 촬영한 듯 배경도 흐릿했습니다. 불신이 커진 저는 대여를 한 번 더 망설였습니다.
먹튀검증 사이트에서 발견한 익숙한 흔적
고민 끝에 먹튀위크 홈페이지를 열고 판매자 전화번호 뒷자리와 제시된 계좌 번호를 입력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등록된 ‘고가 렌즈 선보증금 사기 의심’ 글이 검색 결과에 나타났습니다. 본문 속 상대 닉네임 끝 철자가 한 글자만 다를 뿐, 대화 스크린샷과 사진 구도가 거의 일치했습니다. 특히 ‘군 훈련소 입소’라는 사유와 ‘보증금 당일 환불’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복사돼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어려웠습니다.
이미지 비교에 이어 검색까지 동일 패턴이 확인되자, 남은 건 입금 여부였습니다. 저는 예의를 갖춰 거래를 진행하기 어렵겠다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상대는 잠시 뒤 “다른 대여자가 확정됐다”며 대화를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최초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흔적을 남기고 돌아온 금요일 새벽
거래는 취소됐지만 여운이 남았습니다. 저는 제가 얻은 사진과 채팅 기록을 정리해 먹튀위크에 추가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주말을 지나 월요일 아침, 같은 계정으로 비슷한 가격의 렌즈 대여 글이 다시 올라왔다가 신고 후 바로 삭제됐다는 공지를 확인했습니다.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결국 렌즈 대여는 신뢰도가 높은 오프라인 샵을 이용했습니다. 가격은 두 배였지만 계약서에 보증 조건이 명확히 적혀 있었고, 장비 상태도 직접 살펴볼 수 있어 안심이 됐습니다. 캠퍼스 벚꽃길이 만개한 날, 선배가 훌쩍 떠난 연구실 옥상에서 찍은 사진 속 꽃잎은 기대한 만큼 부드럽게 번졌습니다.
끝까지 해소되지 않은 마음
돈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보다도, 의심과 확신 사이를 오간 과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보정이 과한 사진 한 장이 빠르게 감정을 흔들었고, 검색창에 적힌 두어 줄의 글이 순식간에 판단을 바꿨습니다. 실제로 피해가 없었기에 기분은 모호합니다. 사기를 당할 뻔한 경험이라기보다는, 확신을 갖기도 애매하고 안심하기에도 부족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가격이 크게 낮을 때, 그리고 사유가 지나치게 그럴듯할 때, 저는 이제 먼저 먹튀위크부터 열어 볼 겁니다. 자정 무렵의 충동은 잠깐이고, 다음 날 연구실 모니터에 남은 카드 결제 기록은 몇 주씩 이어지는 법이니까요.